기사 메일전송
교회의 생명을 위한 정통신앙과 정통실천의 균형
  • 편집국
  • 등록 2022-06-26 14:11:53
  • 수정 2022-07-04 16:20:50
기사수정
  • 정통 신앙과 실천의 균형 <1> "왜곡된 개혁주의 이해"
  • 이한수교수(총신대학교 명예교수, 신약신학 Ph.D)


 < 이한수교수 >




 "왜곡된 개혁주의 이해"

 


  본인은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30년이 넘게 교수로서 목회자 후보생들을 가르쳐 왔다. 젊은 신학도 시절부터 귀가 따갑게 개혁주의 신학이란 것을 배워오면서 그것이 참으로 멋진 신학체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주인 되게 하시고 그의 왕적 주권이 실현되기를 열망하는 것이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합동교단 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한 인사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제게 놀랍게도 이런 말을 했다. “성경은 주일날 교회에서 설교할 때 필요한 것이지만, 정치를 할 때는 정치논리로 해야 한다.” 제가 놀란 이유는 그분은 평생 입버릇처럼 개혁주의 신학을 파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 그의 이 말을 듣고 그가 결코 개혁주의자가 아니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정치는 성경이 아니라 정치 논리로 한다고 말할 때, 그가 말하는 정치논리란 무엇일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돈과 권력에서 나온다. 돈이 있어야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고 권력의 자리에도 오를 수 있다. 필요하다면 권모술수도 해야 하고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해 함정도 파야하고 자리와 이권을 나누어주어 자기 세력들을 규합해야 한다. 




 만약 그가 그런 정치논리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는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면서 너희도 나를 본받아 섬기는 종으로 살라는 예수의 제자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세상의 논리는 힘을 가진 사람이 힘이 없는 사람 위에 주인 행세를 하고 군림하는 파워 게임의 논리이지만, 천국의 질서는 죄인들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짊어지면서 섬기는 종으로 사셨던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섬김의 질서이다. 과연 교회의 진정한 정체성은 어디에 있을까? 무엇이 과연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실천하는 길일까?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신학의 원리로만 써먹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신학교와 교단에서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주인 되심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이해득실뿐이기 때문이다.

 

 

0
dummy_banner_2
dummy_banner_3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