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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외선교의 원리에 대한 재조명 1
  • 편집국
  • 등록 2022-08-19 19:20:45
  • 수정 2022-08-19 19: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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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도, 말씀 그리고 성령의 역사에 의존한 선교
  • 평신도들이 동원된 선교정책이 요청됨





[ 심창섭 교수 ]




한국의 해외선교의 원리에 대한 재조명

 



1. 기도, 말씀 그리고 성령의 역사에 의존한 선교

 

 원산과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원리를 한국 선교사역에 대비해 본다면 우선 부흥의 가장 기본적인 경험이었던 말씀과 기도 그리고 성령의 역사에 대한 경험들이 선교사로 파송되는 사역자들에게 철저하게 요구되었고 그리고 훈련 되어졌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각 교단에서 파송되는 선교사의 훈련 과정을 보면 이러한 요구에 대한 자료들이 없는 것 같다. 예수는 적으도 3년간 제자들에게 강한 기도와 말씀 그리고 전도생활의 훈련을 습득하게 하셨고 현장 실습도 하였던 것이다.(마 10:5)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성령을 보내사 소명에 대한 체험 그리고 능력을 갖게 했던 것이다.(행 1:8) 실제 국내의 선교훈련 프로그램들이 각 교단별로 조직되어 있지만 이러한 철저한 기도와 말씀 그리고 성령의 능력에 대한 경험에 의해 선교사가 파송되는 과정은 없다. 대부분의 선교프로그램은 선교를 지망하는 신학교 졸업생들에게 현지의 문화와 언어를 익히기 위한 훈련을 하고 선교학적인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들로 선교훈련프로그램이 형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선교훈련프로그램은 학문적, 신학적, 직업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선교사의 자격으로 영적인 면을 전제하긴 하지만 이 방면의 실제적인 훈련 프로그램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온전한 회심의 경험, 성경지식의 필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확신, 전적인 헌신의 삶 등을 전제로 한 훈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훈련은 이런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 GMTC의 훈련목표는 다음과 같다. 선교에 관한 신학적 훈련 외에 주로 기술적인 강조가 강화되어 있다. 

 

 전도, 제자훈련, 교회개척, 교회성장과 같은 분야에 있어서의 사역기술을 연마한다. 타 문화권에서 생존하고 뿌리를 내려 사역 할 수 있는 능력 배양 그리고 타문화권에서 건강유지, 건강한 생활, 가정생활, 자기 관리 등을 잘 할 수 있는 개인적 훈련을 강화 하는 등이다.

 

 물론 이러한 훈련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원산과 1907년 대부흥운동을 조명해 볼 때 선교현지에서의 선교사들의 신앙의 질적 요소(기도, 말씀, 성령의 체험)는 선행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특히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효시인 1903년 원산의 부흥운동은 바로 이러한 영적인 각성을 통해서 점화되었기 때문이다. 메리 놀스에 의해 1904년 2월 호 [여자선교사회보]에 보고된 원산에서의 영적 사건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선 첫째로 여사님께 지난 여름 우리끼리 가졌던 집회에 관해 말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온 화이트와 서울에서 온 하운셀이 8월에 우리를 방문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새로운 일을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며칠 동안 함께 성경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비록 소수였지만, 모두 일치된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는 축복을 담대히 주장했습니다. 그 기간은 마음을 살피면서 하나님께 더 나아가는 기간이었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모든 약속을 이루시고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를 만나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발아래 앉았을 때, 때로는 하늘의 문으로 돌리는 듯했고, 우리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축복이 우리 위에 부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공부하고 기다리는 이 시기는 일부 선교사들의 삶에 있어서 결정적 전기를 마련해 주었고, <290/291>, 이전에도 신실하고 성별된 일꾼들이었지만, 그 날 이후 주님의 영광이 그들 안에서 더욱 온전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원산에서 부흥은 그 때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2. 평신도들이 동원된 선교정책이 요청됨

 

 선교는 성직자들의 독점적인 사역은 아니다. 예수의 사역 현장에서 동원된 사람들은 당시의 정황들로서는 평신도들이었다. 예루살렘에서 철저하게 훈련받은 사제계급의 성직자들이 아니라 들판이나 해변에서 불려 나온 보통사람들이었다. 한국교회의 선교정책 특히 교단의 선교정책은 주로 성직자들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바울의 선교 여행에서 보여주듯이 현장에서 픽업된 평신도들이 바울과 함께 사역자로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디모데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좋은 실례이다. 이들은 성직자라는 브랜드가 없는 민초들의 순수한 선교 움직임이었다. 극단적 선교단체의 대표들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한국교회의 권력지향성은 극대화 되어 있다. 자기 성 쌓기에 이어 세속권력과 경쟁한다. 자기교회에서 세상 방백과 고관을 배출하며 그것을 자랑한다. 십자가와 복음이 능력이다. 문명화 된 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회복되어야 하며 교회의 문명화를 강력히 거부하는 새로운 시대가 한국교회에서 일어나야 한다. 세상 권력과 세상 테크닉에 의존하는 교회부흥이 아니라 바닥에서 시작하는 풀뿌리 운동의 기조가 교회운동의 핵심전략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술, 테크닉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려고 하는 모든 종교 기술자들은 배척되어야 한다. 민초들이 일어나 교회를 장악한 권력을 제어하고 교회를 다시 접수해야 한다. 오직 복음의 능력으로 새롭게 되는 한국교회를 위한 하늘에 속한 사람들의 반란이 일어나야 한다.

 

 이와 같은 선교적 표현이 약간 극단적이긴 하지만 원산의 부흥운동도 따지고 보면 민초들의 반란이었다. 성직자들이 아닌 여성 평신도의 영적반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디(Hardie) 선교사도 그 반란에서 문명화된 자아를 죽인 것이다. 이것이 부흥이 일어난 동력이었다. 선교는 조직된 구조가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역동적인 영적 반란이었던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한국교회의 세계선교는 평신도들의 역동적인 헌신이 결여되어 있었다. 특히 교단 선교는 이러한 현황이 심화 되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2007. 03. 19) 합동측 선교사 파견 통계에 의하면 목사/사모는 1613명이며 전도사 110명 그리고 평신도는 100에 불과하다.

 

 교단에서의 선교사는 주로 성직자들의 몫이여 평신도의 역할은 극히 미약함을 알 수 있다. 물론 성직자들이 최선을 다해 선교 활동을 하고 있지만 세계선교의 역사나 한국의 선교역사에 비해 평신도의 선교 활동은 미개척지로 남아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평신도 선교는 주로 교단 선교가 아닌 UBF와 같은 패라처지 운동단체(para-church movement)가 앞장서고 있다. 



*주필: 심창섭교수

         전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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