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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 남해에 살어리랏다 2
  • 편집국
  • 등록 2022-07-10 13:47:54
  • 수정 2022-07-13 18: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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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래'라는 말을 아시나요?


홍명유목사 / 남해창선교회



바래라는 말을 아시나요?


단순히 농사나 고기를 잡는 어업에 종사한다는 직업들을 논하기 전에 이곳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아오며 가졌던 직업과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말을 먼저 나누고 싶다. 이 말을 처음으로 듣고 이해하게 되면서 삶의 철학과 직업에 관한 선조들의 지혜를 깨닫게 되었다. 그 말은 “바래”였다. 이전에 바래란 말을 들어 본적이 있는가? 남해도를 관광했던 사람이라면 혹시 알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특별히 관심을 가진 사람들만 알아차렸을 것이다. 나도 이 말을 처음 듣고 교인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바래가 바래지 무슨 뜻이 있겠느냐?”고 대답했다. 아마도 너무나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토속용어이기에 굳이 의미를 찾고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도 검색해보는 가운데 “바래”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되었다. 바래란 남해 고유어로 “물때에 맞추어 갯벌이나 갯바위에 가서 양식거리가 될 톳이나 파래 같은 해초류나 굴이나 고동과 같은 해산물을 채취해 오는 행위”를 말한다. 썰물이 되어 갯바위와  갯벌이 드러나게 되면 바닷물이 차있을 때와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지천에 양식거리가 널려 있다. 물때를 맞추어 갯벌로 가서 그것들을 채취해 오는 것이다. 이 단어의 뜻을 새기는 가운데 갑자기 머릿속으로 스쳐가며 흥얼거려지는 동요가 있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섬집아기”(한인현 작사, 이흥렬 작곡)라는 동요와 “바래”라는 단어가 오버랩 되면서 뜻이 더욱 분명해졌다. 섬 여인들의 고달픈 삶의 여건이 고스란히 이 단어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남편들이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을 때 아기를 둔 엄마는 집안일과 밭일을 혼자 해야만 했다. 아기가 어리기까지 하다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이 나고 아기가 잠든 그 짧은 틈을 이용해서 바구니를 들고 시장이나 마트가 아니라 바다로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그날 저녁에 먹어야 하는 찬거리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동요 “섬집아기”에서 노래하는 대로 아기가 깰 것이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여인들은 바구니에 욕심껏 채우지 않는다. 그저 하루 한 끼를 해결해줄 수 있는 먹거리가 바구니 속에 담겨 있다. “바래”란 하루의 양식거리를 얻기 위해 갯바위로 향하는 우리 어머니들의 하루 양식거리 노동이 담겨 있는 아름다운 단어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가족들을 위한 한 끼 양식을 위한 아름다운 순례! 이렇게 정의할 수 있는 “바래”를 우리 주님께서도 기도를 가르치며 알려주셨다. 주기도문을 기억해 보라.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 

 주님의 기도이자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주기도문에서 주님은 우리의 초점을 크고 위대한 것 즉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에 두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다. 그런 후에 우리 자신을 위한 첫 번째 간구를 말씀하시면서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다. 


 주기도문을 고백할 때마다 늘 가슴에 와 닿고 내게 질문을 던지는 구절이다. 나는 정말 일용할 양식을 위해 일하고 있는가?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가? 일용할 양식을 위해 어떻게 땀을 흘렸는가? 나의 한계를 하루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는가? 하루 한 순간에 얼마나 충실했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루의 삶에서 만족하지 못하면 일주일의 삶에서도 불만족하고 한 달과 1년이 쌓이고 나중에는 인생 전체가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찰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최근에도 한탄하고 분노하면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문제도 바로 이 문제일 것이다. 하루를 귀중하게 여기고 하루의 양식에 만족한다면 어떻게 남을 속이고 사기를 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기업에 수백억 원의 돈을 요구하고 다른 사람의 회사를 빼앗고 선량한 사람들을 직장에서 쫓아내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굳이 다른 사람을 볼 필요도 없다. 나 자신을 보더라도 일용할 양식에 대한 초점을 잃게 될 때 잡스러운 욕심들이 나를 흔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목회에 있어서 바래, 즉 일용할 양식은 교인 즉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들이다. 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이끌고 그를 하나님 앞에서 구비된 자로 세울 수 있는 것이 바로 목회자의 사명이고 목회의 궁극적인 목표다. 

 그러나 때로 이 기본적인 사명은 뒷전이고 다른 것이 나를 이끌고 갈 때가 많다. 교회 행사나 행정적인 일, 노회나 다른 외부적인 일들이 목회의 본질인양 포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흔들리고 있는 부분을 확인해보면 분명 부실한 하루가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영혼을 돌보는 기본적인 일에 집중하며 하루를 통해 거둬야 할 것들을 늘 염두에 두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일용할 양식을 손에 거두는 기쁨도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날마다 묵묵히 생명을 위한 바래 순례를!

 

 하루는 넓은 밭을 소유한 한 어르신을 만나 뵈었다. 농사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상당히 넓은 땅이었다. 더구나 그 땅에는 집입하는 농로가 나있지 않아서 트랙터나 경운기의 접근이 불가능했다. 그 넓은 땅에 어떻게 파종을 하고 관리하실지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그 어르신은 호미 한 자루를 가지고 그 밭을 다 일구었다고 하셨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놀라며 묻는 서울 촌목사에게 그 어르신이 대답해주셨다. “목사님, 하루에 정해진 양 만큼 조금씩 하면 이 넓은 밭도 다 만들 수 있고 가꿀 수 있습니다.”



 곡괭이나 삽도 아니고 작은 날의 호미로 말이다. 체력이 튼튼한 청년도 아니고 팔순의 노파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넓은 밭을 그 어르신은 혼자 일구고 있었다. 그 단순한 원리가 그 어르신이 그 넓은 밭을 일구는 일머리였다. 젊은이가 트랙터로 하루 만에 일궈놓은 밭을 바라보며 슬퍼하거나 분을 낼 필요도 없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밭에서 일용할 양식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정해진 면적의 밭에서 호미질을 할 때 참된 감사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바래”는 나에게도 매우 중요한 단어이다. 생명과도 같다. 왜냐하면 바래가 없으면 나는 나의 건강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같이 이곳 남해군의 바닷가로 나있는 8개의 바래길 코스 중 하나인 고사리밭길의 일부를 산책한다. 말이 좋아 산책이지 치료에 가깝다. 젊은 시절부터 당뇨를 가지고 살기에 매 식후 30분이 지나면 30분 이상을 가볍게 속보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때론 비나 눈이 오거나 날씨가 너무 더우면 집에서 런닝 머신으로 운동을 하기도 하지만 절대로 거를 수는 없다. 내게 하루에 주어진 일용할 분량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운동으로 먹어야 하는 양식이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바래길을 끊임없이 걷고 또 걷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 결과를 3개월 후에 보게 되기 때문이다. 당뇨 환자는 매일 혈당을 체크하기도 하지만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당화혈색소를 검사해야 한다. 지난 3개월 동안 내 몸 속의 당이 어느 정도로 유지되었는가를 평균치로 환산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몸속의 혈액이 지난 3개월 동안 무엇을 했는지를 기억하게 만들어 놓으셨다. 


 그래서 당화혈색소 검사를 하는 날은 긴장되기 마련이다. 3개월 동안의 평가이기 때문이며 의사 선생님이 두렵기 때문이다. “목사님이 이렇게 하시면 됩니까?”라고 충고하시기 때문이다. 그 3개월은 어떻게 해서 나오는 것인가? 바로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걷는 바래길의 순례가 축적된 결과이다. 하루의 바래가 없다면 3개월 동안의 좋은 당화혈색소 수치도 결코 있을 수 없다.


 세상에는 대박을 좇고 운수대통을 기대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인생역전을 꿈꾼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복이 있다. 하루 양식, 하루 대통의 땀을 흘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일, “바래”의 순례를 날마다 제대로 감당해야겠다. 



☞홍명유 목사


 -총신대학교 신학과 및 신대원 졸업

 -미국 Biola 교육학 박사 

 -육군 군목 사역

 -저서, '청년사역 맨 땅에 헤딩하라'

 -현, 창선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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