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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구속력
  • 편집국
  • 등록 2022-07-13 18:36:22
  • 수정 2022-11-09 15: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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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와 발전을 위해 상대화 하는 말을 해야



이국진목사 / 전주예수비전교회




말의 구속력 



 예전에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말하는 분이 있었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하여 “이렇게 하는 게 법입니다”라는 말을 좋아했는데, 그 법이란 게 우리 중에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법이었다. 자신만의 독특한 주장일 뿐이었다. 그분 때문에 교인들 전체가 너무나도 힘들어했다. 주를 위해 열심히 일하려다가도, 그 사람이 나타나서 던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 법이라는 말에 분노하며 봉사를 멈추는 일들이 잦았다. 자기 자신은 교회 내에서 아무런 봉사도 하지 않으면서, 열심히 있는 성도들이 일할 때마다 옆에서 정죄하는 말을 내뱉어 그 열정을 식히곤 했었다. 그가 내뱉은 말은 다른 사람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들곤 했다. 


 자기 주장만 하면 그 말에 자신이 올무에 갇히게 된다

 문제는 그런 자신의 말에 의해서 자기 자신도 갇혀버렸다는 점이다. 자신이 했던 말이 올무가 되어, 결국 그분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때 내 역할은 그분이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문을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그게 참 힘들고 피곤했었다. 이런 저런 설득으로 그 굴레에서 나올 수 있게 만들어주면, 그때서야 “그렇다면 가능하죠.” 하면서 슬그머니 발뺌을 하는 일들이 잦았다. 안타까운 것은 그분이 교회의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반면에 어떤 분은 늘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로 말했다. 온화한 모습으로 말이다. 그분은 교회에서 중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분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때에는 언제나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를 물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라는 단서를 꼭 달았다. 


 옳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겸손하게 말한다

 대체로 앞 분의 말은 틀렸었고, 이분의 말이 대체로 옳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은 겸손하게 말하는 반면, 잘못된 주장을 하는 사람은 강하게 말한다. 내가 뱉은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이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게 막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구속하여 자기 자신도 그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다.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 교회 안에는 자신의 손은 하나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무거운 짐을 다른 사람에게 지우는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이 많다. 그런 바리새인이야말로 높은 단계의 신앙인인양 착각하게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그런 현대판 바리새인들이 늘어났다. 이러한 점이 아쉽다. 



 내 주장이 옳다고 단언하기보다 여러 의견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여 내가 잘못 알고 말했을 여지를 남겨 놓아야, 스스로 갇히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길도 막지 않으며 대화로 발전이 가능하지 않을까? 말은 일단 함부로 내뱉어버리면, 그게 나를 구속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의 노예가 되기 쉽다. 내가 경험한 것이 우상이 되어, 그러한 경험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성공의 경험은 오히려 미래를 실패로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고, 내가 경험한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사울 왕이 다윗에게 자신의 갑옷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 어쩌면 다윗에게 자신의 갑옷을 강요하지 않은 것이 사울의 생애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 아닐까? 사울의 갑옷은 그 동안 수많은 승리를 안겨준 갑옷이었다. 사울의 갑옷은 그 동안 수많은 적의 화살로부터 그를 지켜준 옷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승리의 경험이 다윗에게도 통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다윗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사울 왕의 칼도 다윗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승리의 공식이 다윗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다윗에게는 다윗만의 방법이 필요했었다. 그것은 어설퍼보인 물맷돌이었다. 


내 주장을 절대화 말고 상대화 하는 지혜 필요

 내가 알고 있는 지극히 일부분적인 지식에 근거하여 강하게 주장할 게 아니다. 그렇게 하면 창피만 당할 뿐이다. 꼰데라는 소리만 들을 뿐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예전에 맛있는 포도주를 제공했던 가죽부대가 새 술에는 어울리지 않을 수있음을 담담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늘 자신의 생각을 상대화해서 말해보자. 그렇게만 해도 평화가 올 것이고,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국진 목사


 -총신대학교 신학과 및 신대원 졸업

 -노스 웨스트 대학교 신학박사(Ph.D.) 

 -육군 군목 대위 예편

 -대신대, 전북신학원, 횃불회 등 강사 역임

 -'돈인가, 예수인가?' '예수는 있다' 등 저서 다수

 -현, 전주예수비전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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