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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선교 전략적 의의 2 [ 기획 series ]
  • 편집국
  • 등록 2022-07-15 17: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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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속성에 충실한 운동
  • 헌신, 기도, 말씀



[ 심창섭 교수 ]




한국교회 부흥운동은 

복음의 속성에 충실한 부흥운동이었다

-헌신, 기도. 말씀-


 

 Stanley Soltau는 초기 한국교회의 부흥의 특징을 잘 지적을 하고 있다.

 


복음과 헌신 강조

 첫째, 한국교회는 개인적인 복음과 헌신을 강조하였다. 개신교 선교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사역은 개인의 영혼구원이었다. 한국의 복음화도 이러한 정책의 기본구조에 충실하였던 것이다. 한국의 복음을 위한 전략은 역시 개인의 복음화에 있었다. 그리고 그 개인의 신앙과 간증(personal faith and testimony)은 삶의 힘과 어울려져 큰 효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특히 자발적인 사역자들의 신앙 간증은 한국교회의 성장에 크게 공헌하였다. 개인적인 사역자들은 사례를 받지 않고 열심히 전도지와 소책자들을 조직적으로 배포하면서 전도에 헌신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겨울 농한기 등을 이용하여 전도 활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한국교인들의 초기 신앙이 얼마나 헌신적이었는가는 새문안교회의 건축에서 볼 수 있고 이러한 현상은 한국교회 부흥의 초기에 나타난 전형적인 신앙열정이었다. 당시 새문안교회의 건축비가 크게 부족함을 인식한 가운데 이춘호 집사가 교인 스스로 교회를 건축할 것을 제안하자 교인들이 이에 동조하여 성전을 건축하였던 것이다. 

 

 여인들은 여인들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지원했고, 소년들은 그들대로 등에 돌을 져 모아 건물에 사용되는 필요한 건축 자재를 모으는 일에 자발적으로 동참했다. 몇몇의 그리스도인인 목수는 격일로 자원하여 교회건축을 위해 수고하였고, 이틀 중 하루는 자기들의 가족 생계를 위해 일했다. 선교회는 단지 대지와 벽돌과 몇 개의 재목만을 공급했다. 선교사들이 웃옷을 벗어 제치고 건축을 도왔다. 같은 해 크리스마스에 750엔의 건축비용을 한국인들이 전적으로 부담하여 아름다운 새 예배당 새문안교회를 봉헌할 수 있었다. 평양에서도 한두 교회가 이렇게 완성되어 봉헌되었고, 이어 다른 선교 지역에서도 그와 같은 사례들이 이어져 교회 건축의 자립은 부흥운동 이후 마치 한국교회의 특징이라고 할 만큼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기도와 성경공부에 전념

 둘째, 한국교회는 기도와 성경공부에 전념하였다. 한국의 기독교인은 선교초기부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하고 그 말씀을 받아드릴 때 그것이 인간의 영혼을 구원할 길일뿐 아니라 그로 인해 인간의 삶이 변화를 받는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한국의 초기기독교인들은 성경을 사랑(Bible-loving)하고 성경을 배우(Bible-studying)는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거의 모든 교회에서 성경 공부반(Bible class)이 조직되었고, 매년 4-10일간 사경회(Bible conference)가 개최되었던 것이다. 이 기간 동안 3시간의 성경공부와 헌신적인 전도, 그리고 저녁부흥회와 새벽기도모임을 가졌던 것이다. 1930년에 1659차례의 부흥사경회가 열렸고, 이로 인해 101,250명이 참가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성과를 가져온 부흥사경회의 효시는 바로 1903년 원산의 사경회와 이로 인해 발생한 1907년 평양의 사경회였던 것이다. 즉 1907년 부흥운동의 실제적인 기초는 성경공부에 있었던 것이다. W. B. Hunt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전교회 즉 모든 교인들, 젊은이든 나이든 사람이든, 문맹자이든 아니든, 조직적으로 그리고 대단하게 훈련반이 조직되어 훈련이 실시되었는데 교과서는 성경이었다. 이 중에 어떤 사람들은 대표적인 성격의 사람이 있었고, 모든 분야에서 몰려들었고, 그렇지 아니한 경우는 지방 사람들이 왔는데 특별한 그룹의 사람들이기도 하였다. 어떤 그룹은 남자만의 경우도 있었고, 동시에 여성만의 그룹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골에서 남녀가 가르쳐 졌고, 비록 분리된 반이었지만. 때로는 이러한 클래스들은 전적으로 선교사들에 의해 가르쳐졌고, 어떤 경우는 도우미들도 가르쳤다. 그러나 자주 도우미 혼자서 가르치기도 하였다. 성경공부가 클래스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기도, 회의, 실질적인 전도 노력들이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성경중심의 삶과 교회 훈련

 셋째, 한국교회는 성경중심의 삶과 교회 훈련(church discipline)을 강조하였다. 한국의 기독교는 초창기부터 안식일 준수로 인해 세상과의 관계에서 차별화하고 새로운 믿음의 세계에서 새 삶을 구가하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인식일의 준수는 율법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확신하는 신앙의 행위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예배 참석을 중요시 여기는 종교적인 관습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새신자의 세례를 위한 1년간의 준비과정인 학습기간(catechetic period)을 두었다. 이 기간 동안 새신자들에게 철저한 안식일 준수와 예배의 참석을 훈련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 정식교인이 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교회에 출석하고 신앙인으로 헌신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추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안식일 준수는 단순한 율법준수의 차원을 넘어서 성경말씀의 가르침을 지켜야 한다는 철저한 성경위주의 신앙에 근거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한국교회의 부흥의 초석이었던 원산과 평양의 부흥운동은 복음의 원색적인 속성에 충실했던 평신도들의 헌신에서 출발하였던 것이다. 복음에 대한 개인적인 헌신과 반응 그리고 기도와 말씀연구를 통한 신앙과 영적부흥을 경험한 것이다. 동시에 말씀에 충실하게 생활하는 성경적인 신앙에 충실했던 것이다. 주일성수가 그렇게 중요했던 것도 바로 성경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성경에 대한 존중성 때문이었다. 원산과 평양부흥운동은 이렇게 원초적인 복음의 속성에 충실한 교회를 처음부터 이 땅에 세우게 했고 이것이 지속적인 교회의 부흥을 위한 에너지원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특징으로 규정되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원산과 평양의 부흥운동은 영적 신앙의 부흥은 물론이고 한국선교의 성공에 기여한 외적 요소들인 의료선교와 교육선교 등에도 열기를 가하게 했던 것이다.



*주필: 심창섭교수

         전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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