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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역의 성경적 원리 1
  • 편집국
  • 등록 2022-08-08 08:56:33
  • 수정 2022-08-08 09: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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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도 말씀 성령의 역사에 의존한 사역
  • 평신도들이 동원된 사역



[ 심창섭 교수 ]






선교사역의 성경적 원리 1

 

 기독교 종교에 있어서 선교는 확실한 성경적 근거를 갖고 있다. 아니 기독교 신앙자체가 선교에 중심을 두고 있다. 바빙크는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전 세계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이 선교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일반종교는 대부분 지역적이고 종족적인 한계에 머물러 있는 경향이 있었지만 기독교는 처음부터 세상을 위한 종교였다. 이런 세계관은 구약에서부터 신약 그리고 사도시대와 인류 역사 속에서 반증되고 있다. 그래서 복음을 비 기독교권에 전파하는 것이 처음부터 아브라함을 부르신 주 목적이었고(창 12:3) 교회의 주된 사명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마 28:19-20; 눅 24:47-49) 

 

 아브라함의 소명은 후손인 이삭에게 전승되었고(창 26:1-5) 이스라엘의 위대한 영웅인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세상을 구원할 대제사장직분의 신분임을 확인해 주신다.(출 19:5-6) 족장시대 이후 선지자를 통해서 같은 맥락으로 말씀하신다.(사 49:6) 이사야 선지자는 선교사역의 주된 인물의 출현을 구체적으로 예시하고 있다.(사 9:6-7; 11:1-10; 53) 구약의 전 역사는 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선교적인 사명의 예비실현의 역사였다. 

 

 신약에 있어서 세례요한 그리고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선교 사역의 소명이 복음전파의 목적이었다. 세례요한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올바르게 이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 12제자를 부르시고 또한 70인을 동원하여 복음전파의 사역을 조직하셨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고착된 민족주의적인 사고를 넘어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 사역의 범위를 확대했던 것이다. 그리고 인종과 계층의 담을 헐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것이다. 마태를 부르시고(마 9:9-13), 헬라인을 찾고(요 12:20-26), 가버나움의 백부장(마 8:5-13)을 방문하고 사마리아에 접근하여 전도하고(요 4:39) 수로보니게의 여인에게 사랑을 베풀었다.(마 15:21-28) 그리고 그는 분명히 못을 박았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마 13: 49-50) 그래서 예수님은 평소에 자신이 말하고 실천한대로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가서 세상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고 하신 것이다. 이 명령에 따라 제자들은 세상 모든 사람을 찾아가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사도 바울의 복음전파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바르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 자체가 복음전파의 산물이며 산증거인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중심부에 서 있고 선교는 교회의 주된 사명인 것이다. 그러면 예수와 사도시대의 선교의 주된 특징은 무엇이며 그것이 원산부흥운동과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 그리고 한국교회의 근대선교전략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연구해 보자.

 


1 예수와 선교

 

 예수의 생애에 대한 기록서인 사복음서는 예수의 사역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 선포라는 선교적인 관점에서 이해되어 진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한 예수의 사역은 다음과 같은 선교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기도와 말씀 그리고 성령의 역사에 의존한 선교 사역이었다.

 

 예수의 천국복음 전파는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바로 기도, 말씀, 성령의 사역이라는 3대 요소가 공존할 때 시작되었다.(마 4:1-11) 이 사건은 예수가 첫 번째 제자들을 만나기 전에 있었던 것으로 마태는 잘 정리하고 있다. 예수는 제자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분명히 자신의 사역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이미 파악하셨던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천국복음을 선포하여 납득시키기 전에 그는 40일간의 기도 생활로 인하여 성령이 충만해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확신하였던 것이다. 이 사건 이전에 예수는 세례를 받았고 이 세례 시에 이미 아버지가 성령을 보내셨고(마 3:16) 선교의 사명을 하늘로부터 분명히 위탁 받았던 것이다.(마 3:17) 종합해 보면 예수는 선교사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았고 이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광야에서 40일간의 기도와 성령 충만 그리고 말씀으로 무장하셨던 것이다. 이것이 예수 선교사역의 제 일 원리요 특징이었던 것이다.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기도 그리고 성령의 도움은 예수의 사역에서 필수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예수는 그래서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유대주의의 기도를 반대한다. 예수에게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이며 그의 뜻을 헤아리는 기도였다. 예수는 새로운 기도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자신이 솔선수범하여 실천하셨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고(눅 5:16), 밤이 맞도록 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눅 6:12),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고(눅 22:41), 그리고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다.(눅 22:45) 그리고 이런 예수의 기도하시는 모습은 당시의 유대인들의 기도하는 모습과는 판이하게 구별되었다. 유대인들은 서서 기도하고,(눅 18:11)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고 그리고 시장터나 성전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기도하였다.(눅 18:10) 그리고 외식하는 자들은 길게 기도하였다.(막 12:40)

 

 유대인들의 기도하는 태도와 전혀 다른 예수의 기도에 대한 교훈을 제대로 인식하고 기도생활에 전념했던 사도들은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고 복음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것이다.

 

 제자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에 힘썼고 그 결과 오순절의 성령 경험을 하였던 것이다.(행 1:14; 2:1-4)) 이로 인해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더욱 전념 하였고(행 6:4), 성령 받기를 원하여 기도하였던 것이다.(행 8:15) 사도들에게 복음전파를 위한 선교사역은 곧 기도와 말씀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통한 현실체험의 광장이었다. 

 

 우리는 1907년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의 현장이 사도행전의 사도들의 경험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에 한국의 오순절운동(Korean Pentecost)이라고 명하는 것이다. 원산에 모였던 소그룹의 여름 캠프의 기도회도 바로 말씀 연구와 기도를 통해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한데서 한국교회의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결국 원산과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불길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2) 평신도들이 동원된 사역이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당시의 성직자 계급에 속한 사람들을 제자로 삼거나 이용하지 아니했다. 도리어 사제계급의 사람들의 힘과 대립된 사역이었다. 예루살렘 중심의 특권층이나 권력층에 의존한 선교가 아니었고 오히려 갈릴리의 민초들이 동원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교육수준도 제도권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 정도였다. 이들은 당시 지배층들의 교육 기관이었던 가마니엘이나 힐렐 학당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예수 자신이 이런 출세 위주의 교육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민초들을 불러내어 도제교육을 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그의 교육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는 제사장이나 사제와 같은 성직자들을 배출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복음 전파할 일꾼을 만드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의 이런 사역에 적합한 사람들은 도리어 갈릴리의 민초들이었던 것이다.

 

 예수의 대부분의 제자들은 갈릴리의 농어민들이었고 마태까지도 세관에 앉아 있던 죄인이었다. 예수가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악전고투하시면서 동원된 사람들은 바로 이런 보통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 갈릴리는 북이스라엘의 진원지로 바벨론 포로 이후부터 남부이스라엘인 유대인들의 멸시의 대상이 되었던 곳이었다. 유대의 랍비들은 갈릴리인들은 토라를 멸시한다고 비난하며 이방인들과 결혼한 변절된 유대인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예수의 복음 사역에 동원된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잘 훈련된 성직자들이나 특정계급의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처럼 원산과 1907년 원산의 부흥운동의 요체도 바로 성직자들이 아니었고, 평신도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이름 없는 여자들의 간절한 기도와 말씀 연구를 통해서였다. 이들은 선교사들의 보조역할이나 도우미로 함께 나섰던 사람들이었다. 하디(Hardie) 선교사도 평신도 의료 선교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평양부흥운동을 주도했던 길선주 목사도 목사가 되기 이전 장로의 신분으로 사경회를 개최하면서 부흥운동을 주도했던 것이다. 냉철하게 생각하면 예수의 복음 선포나 한국 초기의 부흥운동은 훈련 받은 성직자 보다는 평신도들의 신앙이 주도해 갔던 것이다. 



*주필: 심창섭교수

         전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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