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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부흥운동의 교회 교육적 이해 4
  • 편집국
  • 등록 2023-06-10 17: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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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부흥운동(대각성운동)과 뉴잉글랜드 청교도주의
  • 청교도들의 계약 개념 이해

[ 심창섭 교수 ]





"근대부흥운동의 교회 교육적 이해4"

 

 

 

 미국의 부흥운동(대각성운동)과 뉴잉글랜드 청교도주의 

 

영국국교의 제도권적인 신앙문화를 거부하고 개인적인 신앙의 부흥과 자유를 위해 뉴잉글랜드에 도착한 퓨리탄들은 근대적 의미로서 신앙의 부흥을 위한 개혁정신을 주창하였다. 그들은 즉 영국 청교도들의 대각성운동의 역사적인 연속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초기 청교들의 믿음과 가치는 미국문화의 기본적인 핵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 청교도들의 신앙의 가치가 미국 대각성운동에 사회산업발전의 의미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청교도운동은 뉴잉글랜드에서 민주주의와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십자군 원정과 같은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청교도들의 정체를 “뉴 라이트”(new light)로 명하였던 것이다.

 

 퓨리탄니즘은 신앙적인 신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 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정서적이고 지적인 인간의 전 삶의 구성이었다. 그리고 지적인 삶, 과학적인 지식, 도덕성, 습관, 관습, 등을 전체로 하는 문화였다...(William G. Mclougblin 1978 p. 24)

 

새롭게 출발하는 퓨리탄의 “뉴 라이트” 운동은 전통을 통해 성경을 바라보던 관습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새롭게 조명된 이성에 의해 성경을 해석하였던 것이다. 퓨리탄들의 “뉴 라이트” 사상은 그들을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인식케 하였고 동시에 그들의 사업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번창한다는 새로운 신념으로 새로운 사회적인 덕목들을 추구하고 실천하였다. 이 사회적인 삶의 덕목들은 근면, 절약, 검소, 경제적인 정직, 부채에 대한 공포, 신용의 성실성 등이었고 곧 칼빈주의자들의 생활윤리와 일치하였던 것이다.(William g. Mclougblin 1978 p. 27-28) 

 

퓨리탄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견해와 믿음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켰던 것이다. 그들은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그들의 삶의 모든 영역은 신적인 것과 연결시켰다. 신천지에 정착한 역사적인 사실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정착한 신천지는 두 가지의 형태로 존재하였는데 그것은 교회와 정부라고 보았다. 이런 의미에서 당연히 교회와 정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한 기구로 형성되고 지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퓨리탄의 문화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심볼(symbol)과 덕목은 계약(covenant)사상이었다. 이것은 퓨리탄 사회의 가장 기초적이고 보편화된 진리이다. 

 


 청교도들의 계약 개념 이해


퓨리탄들의 계약 개념에는 세 가지의 중요한 요소가 있다. 첫째는 계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관자로 인간과의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계약은 조건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약의 기초를 놓으시고 인간이 이행 할 것을 허락하셨는데 인간 편에서 실패하면 계약은 깨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판과 처벌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계약은 공동체적인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계약이 개인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지지만 계약의 목적은 단순히 개인의 구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개인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형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공동체란 바로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계약이 의미하는 심볼과 신앙은 하나님, 인간, 그리고 동료 성도들의 퓨리탄적인 삶의 모든 영역에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Jerald C. Brauer 1976 p. 6-7) 

 

청교도들이 뉴잉글랜드에 도착하기 전 그들은 이미 메이프라워 계약(Mayflower Compact)을 만들었으며 윈드롭(John Winthrop)목사는 청교들에게 설교를 통해 이점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그는 청교도들은 함께 공동사역을 이행할 계약을 맺었다고 강조하였으며 전 메사츄세츠 만(bay)의 노력은 공동사업으로 맺어진 사람들 사이의 계약으로 이해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모든 사람사이에 맺은 계약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심볼은 그의 설교, 편지들을 통해서 줄기차게 역설되었다.(Jerald C. Brauer p. 8))

 

퓨리탄 사회의 근본적인 신앙과 중심된 가치는 동의의 심볼(symbol of consent)이었다. 이것은 청교도들의 종교적인 경험에 기인한 것이었다. 퓨리탄들은 심원하고 실존적인 개종의 경험 없이는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고 믿었다. 이것이 영국국교의 종교개혁에 만족하지 못했던 신앙적인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개종이야 말로 신적인 선택의 실재에 대한 인간적인 동의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죄의 실재와 그리스도안에서의 신적인 용서의 실재에 대한 경험을 가져야 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동의의 개념은 청교도들의 사회에 줄기차게 흘러갔다.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에 동의하는 것은 인간실존에서도 중요한 열쇠로 요구되는 요소라는 것이다. 한 인간이 교회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교회공동체에 연합하는 것을 동의해야 하며 그 공동체의 규칙을 준수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교회의 맴버들은 그들의 목사에게 동의를 하게 된다. 이것은 정치적인 영역에서도 동일하다. 동의가 바로 모든 열쇠라고 할 수 있다. 다스리는 자들은 사람들의 동의 없이 통치할 수 없다. 그리고 통치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추천과 선거를 거쳐야 한다. 바로 이러한 동의의 심볼이 뉴잉글랜드의 퓨리탄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렸던 것이다.(Jerald C. Brauer pp.9-10)

 

메사츄세츠의 청교도들은 법을 하나님의 질서와 명령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법이 단순히 악에 대한 통제개념이나 타락한 인간의 본성으로 인한 발로로 보지 아니하고 원천적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보았다. 인간이 그것에 따라 살고 일해야 할 규범으로 보았던 것이다. 즉 법은 우주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법을 인간의 산물로 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으로 보았던 청교도들은 영국의 왕과 의회에 저항 할 수 있는 원천을 이 법정신에서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를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유기적인 조직체라는 것에 대한 깊은 신념을 갖고 있었다. 중세기의 계급식의 조직사회와는 다른 투명하고 질서있는 구조에 세워진 사회를 원했던 것이다.(Jerald C. Brauer p. 10-11) 

 

그래서 윈드롭의 설교처럼 산위의 동네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뉴잉글랜드의 퓨리탄의 가치와 신앙의 핵심은 의회를 자유와 책임의 보관소와 인도자의 상징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들은 일찍이 의회중심의 질서와 존중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Jerald C. Brauer p.14) 

 

미국의 부흥운동이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 유럽대륙과 영국을 휩쓸고 지나간 경건주의운동의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뉴잉글랜드 퓨리탄의 정신과 신앙을 이어받았던 것이다. 부흥운동과 퓨리탄은 개종의 경험을 함께 중요하게 강조하였다. 부흥운동의 개종은 복잡한 제도권적인 퓨리탄의 개종경험을 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개종경험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그리고 부흥운동은 퓨리탄니즘과 함께 청교도적인 신앙의 실현을 위해 영국국왕과 의회에 대한 저항적 태도를 함께 나누었던 것이다. 부흥운동은 청교도들의 신앙과 가치를 기반으로 발생하였으며 동시에 청교도들의 미흡했던 신앙과 가치들을 비판 혹은 공격을 통해 청교도들의 어메리칸 드림을 발전시켜 나갔던 것이다. Jerald C. Brauer는 표면적으로는 부흥운동이 청교도주의 형태로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부흥운동에 의해 청교도주의가 공격을 받았다고 논평하고 있다.(p. 18) 

 

그러나 미국의 부흥운동은 청교도신앙을 대표하는 뉴잉글랜드 신학을 기초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부흥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인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와 찰스 피니(Charles Finney)와 같은 인물은 원초적으로 칼빈주의적인 뉴잉글랜드 신학의 환경에서 자랐던 것이다. 물론 찰스 피니는 후에 웨슬리안적인 완전주의(perfectionism)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James Beasley p.1-8) 두 사람은 모두가 개인의 회심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이것은 청교도들의 개인적인 경험적 개종의 개념을 더욱 실존화 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청교도들의 뉴잉글랜드의 신앙적 공영체사회 건설의 이념은 부흥운동에서 개인의 회심을 통해 회복된 신앙으로 말미암아 미국사회를 다시 복음적인 공영체사회로 만들려고 했던 것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교육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었기에 부흥운동의 결과로 폭팔적인 미국의 대학이 설립되었던 점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William Warren Sweet 1965 p. 147-148) 그리고 부흥운동은 사회갱신과 이완된 개념으로 인식 되지 아니했던 점들을 들 수 있다. 



*주필: 심창섭교수

         전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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